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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issues/China

‘솔라 킹’ 스토리

by Jinny815 2013. 8. 8.



스정롱(施正榮). 상하이무역관에 근무 중이던 6년 전, 그를 만났다. 세계 최대 태양전지업체 등극을 눈앞에 두었던 선텍(SUNTECH, 尙德電力).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를 만난다는 건 설렘 그 자체였다. 창업 5년 만에 중국 최고 갑부에 오른 인물, 원자바오 전 총리의 칭송을 받으며 ‘그린(green) 차이나’ 건설의 대업을 짊어진 해외박사 출신 CEO. 영국 일간지 ‘가디언’가 선정한 ‘지구를 구할 50인’ 중 한 명, 솔라킹(Solar King)이란 별명까지... 온갖 화려한 수식어가 오히려 부족해보였다.

2007년 버전
당시 필자는 인터뷰 기사에 이렇게 적었다. “스정롱은 중국정부 장학생에 선발돼 호주에서 태양광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마틴그린(Martin Green)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장쑤(江蘇)성 우시(無錫) 정부가 내놓은 600만 달러의 창업자금지원으로 2001년 회사를 설립했다. 2005년 뉴욕증시에 상장했고 이듬해엔 일본 최대 태양광 패널업체인 MSK를 인수했다. 중국 경제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CCTV 올해의 10대 경제인상을 수상했다. 2006년 말 기준 개인자산이 20억 달러 이상인데 미래 성장산업의 특성을 볼 때, 그의 재산은 계속 불어날 것이다.” 

필자는 그의 성공 스토리를 거대 용트림을 쏟아내는 듯한 중국 경제의 현주소라고 적고, ‘팍스시니카'(Pax Sinica,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 시대가 눈앞에 성큼 다가왔음을 암시한다고 까지 강조했다.

그의 성공코드는 이렇게 풀어썼다. “첫 번째는 자신감. 엔지니어 출신 CEO로 세계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장악력. ‘기업은 실적으로 말한다’는 그의 신념이 말해주듯 끊임없는 연구개발, 공격적 투자와 해외판로 개척노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세 번째는 커뮤니케이션. 국내외 고객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노력이 탁월하다.”

인터뷰 기사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저비용의 ‘차이나 메리트’(China merit)에 기반을 두지 않았다. 남보다 앞선 기술에다 시류를 정확히 읽어낸 혜안이 있었다. 그에게서 분명한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중국=위험’이라는 ‘차이나 리스크’(China risk) 타령은 이제 접어야겠다. 기회는 위기 후에 찾아오고 돈은 난리 통에 번다고 했다. 격동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2007년 중국. 지금은 ‘차이나 오퍼튜너티’(China opportunity)에 초점을 맞출 때다.”

2013년 버전
6년이 흐른 지금, 필자는 그의 인터뷰 기사를 완전히 다시 쓰고 있다. 기업과 CEO에 대해선 이렇게 적어야 한다. “선텍은 지난 3월 만기가 돌아온 5억 4100만 달러 규모의 전환사채(CB)를 갚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고 5일 후 현지 중급 인민법원은 8개 채권은행단이 제출한 파산 및 구조조정 계획을 승인했다. 스정롱은 CEO직에서 물러났고 전성기 때 200억 달러에 육박하던 회사 시가총액은 2억 달러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성공 스토리는 실패 요인으로 바꿔 적는다. “공급과잉과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화근이다. ”선텍은 ‘기술과 실적으로 말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저가경쟁을 통한 덩치 불리기에 몰두한 결과 해외에선 반덩핑 공세에, 국내에선 부채압박에 시달려왔다. 태양광은 전 세계 업계의 적어도 절반 이상은 멈춰야 할 정도로 공급과잉이 심하다. 우시정부가 내놓은 자금은 창업지원금이 아니라 단기간 내 실적을 내 지방의 성장률을 올리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하려는 관리들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중국정부가 투입한 4조 위안의 긴급자금은 공급과잉을 더욱 악화시키고 말았다.“

선텍의 사례는 3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기업 파산은 선텍이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철강 80% 미만을 비롯해 설비 가동률이 형편없이 낮은 업종들이 한 둘이 아니다. 조선, 화공, 시멘트, 평판TV 등의 많은 업체들이 언제 도산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덩치 큰 중국기업에 우리가 무조건 긴장만 할 일은 아니다.

둘째 글로벌 1위 센텍의 파산을 감수한 것을 보면 중국정부는 이제 더 이상 기업들에게 생명연장장치를 채우진 않을 것이다. 셋째 선텍의 파산은 리커창 총리의 경제정책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는 2008년과 같은 대대적인 경기진작자금 투입은 없을 것이다. 대신 성장률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대대적인 산업 구조조정과 기업 통폐합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지막으로 한눈에 중국을 판단해버리려는 ‘휴리스틱’(heuristic)의 오류에 빠져선 곤란하다. 한 눈으로 기회를 보고 동시에 다른 눈으론 리스크도 보아야 한다.



2007년 봄, 선텍 스정롱 CEO(왼쪽)와 인터뷰를 마친 후 찍은 사진. 과거 성공모델이었던 선텍은 6년이 흐른 지금, 도려내지 않을 수 없었던 환부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