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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컨설팅

네슬레, 실패로 배우는 위기관리 리더십

by Jinny815 2015. 6. 15.

실패로 배우는 위기관리 리더십

미디어, 실패를 기회로 바꾸는 통로


입력 : 2015-06-14 오전 10:30:00



119 매뉴얼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불이야 불이야”하고 큰 소리로 외쳐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 화재경보 비상벨을 누르고 낮은 자세로 계단을 따라 외부로 이동해야 하며, 이때 연기에 질식할 수 있으니, 물에 적신 수건으로 입을 가린다. 이대로만 하면 위기에서 벗어나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예기치 못했던 위기가 터져도 매뉴얼대로만 행동하면 큰 화는 면할 수 있다.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기업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 이론은 지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기업의 평판과 자산, 상품, 충성 고객들에게 최소한의 피해가 가게끔 조치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사실은 누구보다 기업 운영진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한 번의 위기관리 실패로 회사가 파산지경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에는 소셜네트워크가 발달해 잘못했다간 기업의 실수가 일파만파로 퍼져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집단소송제( CLASS-Action Suits)에 걸리면 벌어놨던 수익을 까먹는 것은 시간문제다.

 

◇네슬레, 인도 시장서 뭇매  

 

이따금씩 기업들은 위기를 모면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매뉴얼을 무시하는 누를 범한다. 요즘 네슬레를 보면 딱 그렇다. 네슬레는 우유를 주원료로 한 이유식과 커피브랜드인 네스카페를 생산하는 세계적인 식품업체다. 네슬레는 똑똑한 인수합병과 기술개발로 세계 곳곳에서 성장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최근 인도에서 체면을 구겼다. 네슬레가 출시한 인스턴트 라면 매기(maggi)에서 대량의 중금속이 발견됐다는 혐의가 제기되면서다. 지난 5일 인도 식품의약품안전청(FSDA)은 지난해 생산된 매기 라면에서 납이 허용 기준치(2.5ppm)의 최대 7배 수준인 17.2ppm 검출됐다며 이 라면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했다.

 

이에 따라 델리 시정부는 모든 식료품점 내 매기 라면 판매를 금지했고 케랄라 주정부는 식료품점 1000여 곳에서 매기 라면를 전면 회수하기로 했다. 네슬레의 ‘납 라면’ 파동은 미국까지 퍼졌다. 지난 12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인도에서 판매가 금지된 매기 라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슬레 측은 자체 실험을 통해 매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나, 어찌 됐든 네슬레의 인도 주력 브랜드인 매기의 이미지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수익 감소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고 직후 네슬레 인도 생산 공장에는 빨간불이 들어왔고 주가는 10%나 빠졌다. 지난해 매기는 인도 라면 시장의 60%를 점유한 바 있다. 네슬레의 수익 중 인도시장에서 벌어들인 규모는 약 1.5%다.

 



◇폴 불케 네슬레 CEO(오른쪽)과 에띠엔느 베넷 인도 네슬레 전무이사가 뉴델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사진=로이터)

 

네슬레 입장에선 답답할 수 있다. 자체 실험과정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납 성분 함유 여부를 떠나 네슬레가 위기관리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힌두스탄 타임즈는 네슬레가 위기관리 과정에서 몇 가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꼬집었다.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네슬레 위기 대처팀의 자세다. 네슬레는 지난 1일 성명에서 “매기 라면은 허용치 이내의 납이 검출돼 안전하다. 조사 결과, 납 성분이 계속 허용치 이내로 나왔다”고 언급할 뿐 별다른 설명을 곁들이지 않았다. 이런 모습이 인도인들에게 자칫 보수적인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점 또한 문제로 지목됐다. 인도에서 네슬레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인 매기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음에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다. 힌두스탄 타임즈 전문가들은 “네슬레 운영진이 소매상점이나 유명 도매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미디어로 울고 웃는 기업들 

 

국제컨벤션협회(ICCA)도 대중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미디어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평판과 자산을 지키기 위해 미디어를 피하기 보다 이용하라는 것. 비즈니스 투 커뮤니티는 식품업체 블루벨을 반면교사 삼아 공식성명을 효과적으로 하는 법을 제시했다. 지난달 미국에서는 리스테리아균에 오염된 블루벨 아이스크림을 먹고 3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블루벨은 오클라호마주 공장을 패쇄하고 사태 수습에 들어갔고 최고경영자(CEO)는 TV에 출연해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성명이 나간 이후 블루벨의 이미지는 더 악화됐다. CEO의 말 속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블루벨 CEO는 회사 법률가가 써준 원고를 무미건조하게 읽어 내려갔다는 비난마저 샀다. 이와 관련해 비즈니스 투 커뮤니티는 성명서를 읽을 때 CEO의 겸손함과 인간성, 사태에 대한 심각성, 유감스러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해 위기를 모면한 사례는 실제로 존재한다. 몇 년전 저가항공사 제트블루는 예기치 못한 폭설로 비행기 운항을 갑자기 중단했다. 이 때문에 백만명 가량의 승객들이 공항에서 애를 먹었고 제트블루의 평판은 금새 악화됐다. 이에 데이비드 닐리먼 제트블루 CEO는 수주 동안 내내 유튜브와 투데이쇼, 레이트쇼, CNN 등에 모습을 드러내 회사의 잘못으로 고객들이 피해를 입었다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닐리먼의 진심이 통했는지 제트블루는 금전적인 손해를 보긴 했지만,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나아가 제트블루를 몰랐던 사람들에게까지 좋은 인상을 남겼고 이는 제트블루가 4년 연속 항공사 만족 1위에 오를 수 있는 힘을 제공했다. 제트블루의 사례는 고객과의 관계 회복에 집중했을 때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