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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창업도전과실패

“5시간 허리 끊어지는 고통 ‘죽을맛’…탈수직전 사과택배香에 잠시 해갈”

by Jinny815 2013. 9. 10.

2012년 6월, 회사 운영을 통해 발생한 부채,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나도 5일간 대한통운 고양시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일을 했다. 아래 기사와 같은 동일한 현장을 경험하면서 땀흘렸던 적이 있다.



[헤럴드기자의 체험 기사]

명절 앞두고 쏟아지는 택배 화물차서 짐내리고 다시쌓는 작업


끊임없이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쉼없이 뛰고 쌓아야 짐추락 면해 30여분 지나자 땀으로 온통 뒤범벅 돌덩이 ‘책’ 노동자에 가장 큰 적


물한모금 못먹고 작업·작업·작업…

5시간 알바에 탈수·현기증 ‘끙끙’ 작업 끝나면“ 3만원 송금됐습니다”




망매지갈(望梅止渴)이라는 말이 있다. ‘매실을 보고 갈증을 잊는다’는 의미로 중국의 조조(曹操)가 남쪽 징벌에 나섰을 때 병사들에게 “저 너머에 매실 나무가 있다” 고 말하여


입에 침이 고이게 해 갈증을 해소시킨 것에서 유래한 이야기다. 앞으로 ‘망매지갈’이라는 말은 택배화물 상하차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쓰여야 마땅하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탈수 직전까지 가고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이겨내며 어쩌다 실려오는 ‘과일 택배’의 향으로 갈증을 견뎌내는 게 택배 상하차 노동자들이다. 


추석을 열흘여 앞두고 있던 지난 5일. 헤럴드경제 기자가 택배 물류센터에서 ‘지옥의 알바’라고 불리는 택배 상하차 일일 노동자로 취업해 ‘체험기’를 적어봤다.



추석을 앞두고 선물 배송이 크게 증가하면서 택배 노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택배 노동자들이 산더미같이 쌓인 소포와 택배를 분류하고 상하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한 물류센터는 ‘광활하다’는 표현이 제격인 창고 건물이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창고 한쪽에 컨테이너로 꾸민 사무실을 찾으니 소장이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전화번호와 계좌번호, 알바기간을 적고 쇼파에 앉아 작업 시작을 기다렸다. 특별한 교육은 없었다.  


오후 5시30분께 사무실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 5명과, 30대로 보이는 신참, 머리가 벗겨진 40대 남성, 이어폰을 꽂은 또 다른 고등학생 한 명이 사무실을 찾았다. 머리가 벗겨진 40대 남성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낮에는 사진사, 밤에는 택배 알바 두 개의 직업을 병행한 지 1년째라고 했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은 용돈을 벌기 위해 일주일째 알바를 하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가장 뒤늦게 합류한 고등학생은 8개월째 택배 알바 중인 베테랑이었다.  


고등학생들은 능숙하게 트레이닝복, 반바지 등으로 갈아 입은 뒤 작업현장으로 뛰어 나갔다. 한 학생은 준비한 장갑을 끼고 토시를 꺼내 팔에 끼우며 “짐을 옮기다 보면 이곳 저곳에 상처가 날 수 있다”며 준비 복장의 이유를 댔다. 


관리소장의 작업 지시 명령이 떨어지자 그중 오랜 경력의 한 고등학생이 차곡차고 쌓여 있던 트레일러를 분리시켜 짐을 실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윽고 ‘차라락, 차라락’ 셔터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두웠던 창고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꽁무니를 창고쪽으로 향한 화물차량이 나타났다. 순간 택배 상하차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차량 화물칸 안으로 택배화물을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창고 끝에서 끝까지 택배화물을 싣고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가로지르며 화물차 방향으로 파란색 컨베이어벨트가 놓였다. 택배화물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끊임없이 돌다가 지정된 화물 차량 앞에서 바코드에 찍혀 화물칸으로 옮겨졌다. 


이때 관리자와 택배 노동자들의 작은 실랑이가 일어났다. 일부 노동자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너무 낮추면, 허리 숙이는 작업을 많이 해야 하니 올리자”고 했고, 관리소장은 “너무 높이면 물건이 떨어질 수 있으니 올리라”고 했다. 결국 소장과 일꾼들의 주장을 절충하는 선에서 컨베이어 벨트의 각도가 결정됐다. 


택배작업은 세 종류로 나뉘었다. 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택배화물의 번호를 확인하는 일, 화물을 해당 트럭으로 이어진 컨베이어 벨트로 올리는 일, 트럭 컨테이너 입구에서 떨어지는 화물을 차 안에 차곡차곡 쌓는 일, 철제로 된 트레일러에 화물을 정리하는 일 등이었다. 


기자와 또 다른 30대의 신참은 화물칸 안에 들어가 짐을 쌓는 작업을 했다. 트럭 화물칸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화물을 차곡차곡 안쪽에서부터 쌓아야 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올라오는 화물을 낚아채고, 뒤쪽으로 운반하는 일도 했다. 문제는 무게가 아니었다. 족히 10m나 되는 화물칸 뒤편으로 짐을 옮기는 동안 이미 다른 화물이 올라 오고 있었다. 화물을 받아내지 않으면, 1m 정도 높이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박스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자는 안간힘을 쓰고 화물칸을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30분 쯤 지날 무렵 기자의 옷은 얼굴과 몸 구석구석에서 빠져나온 땀으로 축축히 젖어 있었다. 관리소장은 기자가 서 있는 컨테이너를 힐끗 보더니, 모자를 눌러쓴 40대 노동자 한 명을 올려 보냈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짐을 싣는 순서가 문제였다. 가벼운 것은 뒤쪽으로 보내고, 무거운 것부터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그마한 박스는 던져도 된다고 했다. 요령이었지만 신참인 기자가 이를 익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5일 밤 10시30분께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한 택배 물류센터, 헤럴드경제 사회부 박병국 기자가 5시간의 택배 상하차

일일체험을 한 후 땀에 절은 모습으로 창고에 서 있다.


온갖 화물들이 올라왔다. 추석을 앞두고 있어 그런지 선물세트가 많았다. ‘생물’이란 글자가 적힌 스티로폼 박스가 올라 왔고, 꽃게도 올라 왔다. 이 생물들은 화물칸 앞쪽에 쌓아야 했다. 택배 알바 노동자들에게 가장 힘든 화물은 ‘책’인듯 했다. 책은 그야말로 돌덩이처럼 박스에 담겨 왔다. 책을 들때는 허리가 끊어질 듯 했다. 박스에 담긴 책을 들고 움직일 때는 몇 번을 쉬어야 했다. 


쉬는 시간은 없었다. 컨베이어 벨트가 가끔 멈춰 섰으나 그때도 일을 멈출 순 없었다. 작업반장역을 하던 한 고등학생은 벨트가 멈추자 잠깐 쉬고 있던 기자를 불러 “×××번호가 찍힌 택배를 골라 트레일러에 실으라”고 지시했다. 이곳은 나이가 중요하지 않았다. 오랜 경력자의 작업 지시 명령은 당연한 것이었다.


몇 개의 화물을 찾아 트레일러에 옮겨 담았을까. 컨베이어 벨트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기자는 컨베이어 벨트 위 택배들이 향하고 있던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가 다시 상하차 작업을 해야 했다. 이 일은 10시30분까지 5시간이나 반복됐다.


화물칸으로 올라오는 짐의 무게와 부피는 점차 커져 갔고 짐의 수도 많아졌다. 기자는 탈수증세와 현기증을 느꼈다. 허리는 끊어질 듯 했다. 


탈수증세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 이번에는 사과 박스들이 연이어 올라 왔다. 추석선물 세트인 듯했다. 박스에서 퍼진 사과향은 어느 새 화물칸을 가득 메웠다. 금세 입에 침이 고이더니 갈증이 해소됐다.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 저 멀리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오는 짐들의 간격이 넓어졌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택배화물의 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옆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들이 기자의 화물칸 쪽으로 넘어왔다. 차량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상하차 작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택배화물차 운전기사까지 가세해 화물칸으로 뛰어들었다. 택배선물을 차량에 쌓은 작업을 돕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다. 하지만 작업의 끝은 아니었다. 창고 바닥에 흩어진 ×××번호의 택배화물을 분류한 뒤 새벽반 노동자들을 위해 트레일러에 다시 실어야 했다. 


작업이 끝난 뒤 흩어져 있던 노동자들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일 각자의 은행계좌로 3만원이 송금될 것”이라고 소장이 말했다. 소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10여명의 노동자들은 곧바로 흩어졌다. ”내일 아침 이들 중 일부는 학교로, 일부는 다른 작업장으로 향하겠지…” 기자의 혼잣말이 어렵사리 나왔다. 



박병국 기자/coo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