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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Trend

세계 로봇대회 제패한 오준호 KAIST 교수, "독재자 소리 듣더라도 철저하게 완벽 추구"

by Jinny815 2015. 6. 17.

“경쟁은 98점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100점에 가까워지려면 철저하게 완벽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독재자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말이죠.”


오준호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16일 대전 KAIST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누구나 98점짜리 로봇은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 교수팀이 개발한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휴보(HUBO)’는 지난 5~6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포모나 전시장에서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주최로 열린 로봇공학챌린지(DRC)에서 미국과 일본, 유럽의 강호들을 제치고 1위를 했다.


지난 2011년 일어난 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기획된 이 대회는 재난 현장에서 사람을 대신해 구난 임무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겨루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차량 하차, 밸브 잠그기, 장애물 치우기, 벽에 구멍 뚫기 등 8가지 과제를 얼마나 빠른 시간에 수행했는지로 순위를 가렸다.


총 24개 팀 중 8가지 과제를 모두 수행한 로봇은 단 3대였다. 휴보는 이들 중 가장 빠른 44분 28초 만에 임무를 모두 수행하며 1위에 올랐다. 미국과 일본 과학자들이 이제 한국도 경쟁 상대로 봐야 한다고 느끼게 한 순간이다. 오 교수는 “제한된 과제를 수행한 대회이기 때문에 이번에 1등을 했다고 휴보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로봇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면서 “다만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의 로봇이나 미 항공우주국(NASA)의 로봇을 이겼다는 것을 볼 때 이제 우리도 이들과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플랫폼을 가졌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휴보는 지난 2013년 대회에서 9위를 했다. 절치부심한 오 교수팀은 이번 대회에서 독창적인 기술들을 선보이며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대표적인 예가 자동차에서 내리는 방식이다. 대부분 로봇은 딛고 내려올 계단을 만들어 이용했다. 휴보는 자동차의 기둥을 잡고 뛰어내리는 방식을 썼다. 또 무릎과 발끝에 바퀴를 달아 평지를 이동할 때는 무릎을 꿇고 바퀴로 달린 것도 휴보만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오 교수는 이런 아이디어보다도 ‘조화’와 ‘안정성’을 더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로봇을 개발할 때 새로운 기능을 한가지 넣으려면 전체 시스템이 바뀌어야 할 만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 여러 기능이 좋아도 한 가지 기능만 약하면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 오 교수는 “8가지 과제 중 한 가지만 포기해도 개발은 굉장히 쉬워진다”면서 “여러 기능을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집어넣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안정성 역시 오 교수가 심혈을 기울인 분야다. 실험실에서 10번 중 9번을 성공해도 실제 현장에서 실패하면 그동안의 개발은 물거품이 된다. 오 교수는 안전줄에 매달지 않은 채로 실험을 반복했고,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 교수는 “안전줄에 로봇을 매단 채 연습을 하던 일본 연구진이 우리가 그냥 연습하는 것을 보고 놀라더라”면서 “2013년 대회에서 얻은 교훈이 바로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휴보 연구진은 ‘팀 KAIST’라는 이름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오 교수가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 KAIST를 운영하는 것은 학내에서도 유명하다. 휴보의 시각 처리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팀 카이스트에 참가한 전기 및 전자공학부 권인소 교수는 “오 교수가 원하는 수준을 맞추려면 한두 번 성공한 기술로는 어림없다”면서 “철저한 도전과 희생정신이 없으면 팀 카이스트에서 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동료 교수와 협업하면서도 매우 냉정한 잣대를 들이댄 일화가 많다. 권 교수팀에서 영상 솔루션을 만들어 가면 오 교수는 ‘세계 최고’가 맞느냐고 묻고,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답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닌 ‘세계 최고’가 필요하다고 답하는 식이다. 박사 5년차인 이인호 연구원은 “오 교수는 회의를 마치고 48시간 또는 72시간 내에 마치라는 주문을 한다”면서 “밥을 먹든 잠을 자든 화장실을 가든 늘 연구 생각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 교수가 독재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학생에게 무릎을 꿇은 적이 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대학원생에게 딱 사흘만 내가 주문한 방식대로 해보라고 무릎을 꿇으며 요구했다는 것. 오 교수는 “천재들이 모인 KAIST에서 대학원까지 진학한 학생들이면 연구에서도 자기 고집이 강하다”면서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알면서 시간을 낭비하게 할 수 없어 때로는 독재를, 때로는 읍소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연구만 하는 분위기에 젖어 있다 보니 팀 카이스트는 회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등 수많은 일화를 낳고 있다.


▲ 휴보를 개발한 ‘팀 KAIST’ 연구진이 16일 대전 KAIST 본관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KAIST 제공



“재난을 해결하는 로봇보다는 스스로 재난을 겪지 않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재난을 해결하러 갔다가 사고를 당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오 교수는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거나 망가지지 않는 로봇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여러 우수한 기능을 갖추는 것은 오히려 나중 일이라는 것이다. 오 교수는 “지형 등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가능해야 이런 로봇을 만들 수 있다”면서 “더 철저하고 강인한 로봇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다른 대회 참가 계획 등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NASA가 진행하는 화성 탐사 로봇 대회 등에 참여 요청을 받았지만 아직은 검토 단계다. 사실 산업통상자원부 과제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연구비 지원도 받고 있지 않아 그의 연구팀은 예산이 넉넉하지도 않다. 이번에 받은 상금 200만 달러(약 22억원)는 모두 연구비로 쓸 계획이다.


“휴머노이드를 만들려고 만든 것은 아닙니다. 여러 임무를 수행하기에 가장 좋은 형태가 휴머노이드일 뿐이죠.”


오 교수는 앞으로도 인간형 로봇을 계속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큰돈을 벌 분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발 과정에서 파생되는 기술이 많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로봇 연구는 산업연구라기보다는 기초연구로 봐야 한다”면서 “정부가 꾸준히 지원한다면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력 : 2015.06.1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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