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이재용의 그룹승계 운명을 가를 삼성물산 임시주총 ‘D-4’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폴 싱어 엘리엇 매니지먼트회장.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여부가 결정될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17일)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예정대로 합병을 추진하려는 삼성그룹측과 이에 반대하는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간에 주주 확보 경쟁은 한층 가열되고 있다. 어느 쪽도 확실하게 안정적인 표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마지막까지 부동표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일단 11%의 지분률을 보유중인 국민연금의 가세로 우호지분에서 앞서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결국 승부는 소액주주들이 어느 편에 설 것이냐에 따라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실패한다면 삼성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승계 전략에도 연쇄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반대로 성공한다고 해도 엘리엇 쪽에서 순순히 물러설 것 같지 않다. 당장 국제소송을 통해 싸움을 계속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다.
◆ 소액주주의 마음을 잡아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11일 기준 삼성물산의 확실한 우호지분은 이건희 회장, 삼성화재, 삼성SDS등 계열사 그리고 KCC에 넘긴 자사주 등을 모두 합쳐도 20%에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최근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의 손을 들어주겠다고 밝혔는데, 문제는 국민연금 보유지분 11.21%를 합쳐도 31%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현행 상법 제522조 제3항, 제434조 특별결의 사항에 따르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원안대로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출석주주의 3분의 2 이상, 전체 주주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대항하는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 7.12%를 갖고 있으며 메이슨캐피탈(2.2%), 일성신약(2.20%), 캐나다연기금(0.15%) 등이 공식적으로 합병반대 입장을 보여 총 11.67%가 엘리엇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표 분포를 보면 삼성그룹측이 현재로선 유리해 보이지만, 엘리엇을 제외하고 24.43%에 달하는 외국인투자자들의 동향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수익률을 제1의 가치로 따지는 외국인투자자들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번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성패는 삼성물산의 지분 22%를 보유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의 찬반여부에 따라 갈릴 것이란 전망이다. 삼성그룹측은 현재 확보한 우호지분 외에 소액주주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비로소 합병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액주주들을 상대로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삼성이 합병발표 이후 주주친화정책 실행계획을 발표한 것도 소액주주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전략이다. 엘리엇도 이에 맞서 12일 ‘주주에게 보내는 성명서’를 통해 “제일모직이 의도적으로 삼성물산에 저평가된 가격을 제시한 합병안 반대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하며 맞불을 놨다.
삼성물산 소액주주의 움직임은 아직 일정한 방향성은 없어 보인다. 합병에 반대하는 일부 소액주주들은 인터넷 상에 ‘소액주주연대’를 만들고 기업 지배구조 컨설팅 업체 ‘네버스탁’을 통해 합병에 반대하는 소액주주 의결권 확보에 나섰지만 이들의 지분율은 1%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주총 당일 날 얼마나 많은 소액주주들이 주총장을 올 것이냐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주주들의 참석률이 높을수록 삼성물산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삼성물산 주주들의 참석률이 80%를 넘으면 적어도 53%, 참석률이 70%를 넘으면 적어도 47%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이 확보한 우호지분 31%를 고려하면 적어도 16%의 우호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지난 6월에 있었던 SK - SK C&C의 주주 참석률이 81.5%였음을 고려하면 삼성물산이 추가로 확보해야 할 지분은 22%이상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 이재용 삼성전자부회장의 그룹승계 운명이 걸린 합병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하는 표면적 이유는 고성장 기회 확보이다. 삼성물산 홈페이지에는 양사간의 합병이 이뤄지면 삼성물산의 글로벌네트워크와 인프라를 통하여 패션, 식음등 제일모직 사업의 글로벌 확장을 도모하고, 고성장사업으로 구성된 제일모직의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건설, 상사의 성장가능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한 홍보문구 이면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승계 전략이 숨어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합병이 성사되면 이재용 부회장이 가장 큰 이득을 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이 가지고 있던 삼성전자 주식 지분 4.1%를 보유하게 된다. 기존 이건희·재용 부자가 가지고 있던 삼성전자 지분 4%를 더하면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을 합한 8.1%의 삼성전자 지분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주식총액이 200조원에 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추가되는 지분 4%는 8조원에 해당한다.
이 부회장 입장에선 이번 합병을 통해 주식시장에서 8조원을 투자해서 주식을 4% 더 확보하는 것과 똑 같은 효과를 거두게 된다. 특히 합병 이전까지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는 삼성생명(7.2%)이었지만 합병이 성사되면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을 거치지 않고서 삼성전자를 직접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건은 작년부터 시작된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권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마침표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은 2014년 11월 삼성SDS와 제일모직을 상장했다. 2014년 11월 기준으로 이 부회장은 삼성SDS 주식의 11.2%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는 공모가 기준 1조6583억원으로 평가됐다. 제일모직의 경우 상장 당일 지분가치만 3조원에 달했고, 현재는 5조원을 넘는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상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추가지분 확보를 위한 재원마련 방안으로 평가됐다.
무엇보다 이번 합병이 성사되면 기존에 복잡하게 얽혀있던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한결 단순하고 명쾌해질 것으로 삼성그룹은 기대하고 있다. 기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제일모직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물산·삼성SDI → 제일모직 순으로 고리가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합병으로 지배구조는 삼성물산(합병)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단순화될 전망이다.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결국 삼성전자의 지배권을 노린 그룹승계전략과 맞물려있다.
◆ 엘리엇의 노림수와 주총이후의 변수
엘리엇은 합병비율에서 현저하게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보게됐다며 합병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발표한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주식 1주당 삼성물산 0.35주다. 단순히 주가수준을 고려하여 양사의 합병비율을 결정한 것이다. 국내법상 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보유중인 각종 계열사 주식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8조원이 넘는 삼성전자 주식을 비롯하여 삼성증권, 삼성SDS, 제일모직, 제일기획, 삼성엔지니어링등 계열사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보유주식 가치만 해도 16조원이 훌쩍 넘는다. 엘리엇은 이 같은 보유주식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주가수준만 계산하여 삼성물산의 가치를 8조 7117억원으로 정한 것은 헐값세일에 해당하며 명백한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소액주주들이 엘리엇측의 논리에 동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향후 엘리엇의 행동방향이다. 엘리엇은 설령 17일 주총에서 표대결에서 패배하더라도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일각에서 엘리엇이 주총이후 이번 이슈를 ISD(투자-국가간 소송)로 끌고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ISD에서 삼성이 이기더라도 삼성이 부담해야 하는 소송 비용이나 이미지 손상 등을 감안하면 결국 삼성이 굴복할 가능성이 높다는게 엘리엇측의 계산이다.
그룹승계전략에 따라 지난해부터 쉼 없이 달려온 삼성그룹으로서는 뜻밖의 복병을 만난 셈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런 난관들을 극복하고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그룹승계방안을 실현시킬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 여정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진설 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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